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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성북동 길상사에 대하여

himimi 행복나눔 2024. 3. 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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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난 성북동에 살았다
그때는 성북동도  빈부차가 심한 곳이였다
성북2동에는 부자집들이 많았다
동창중 하나가 엄청 큰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은 평범하게 한옥집 지상에서 살았다

어릴적 성북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때 성북동과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말로만 듣던 대원각은 정치하는 사람들만 다니고 유명인사만 다닌다고 했다

요정이였던 대원각이 음식점으로 바뀌고  그 다음 1997년 길상사 절로 바뀐 것이다

저는 기독교이지만 절을 배척하지 않으며 좋아합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서 법정 스님을  10년이나 찾아가서 그 당시 천억이나 되는 땅을 기브하여 절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주인공이 김영환이며 자야라고도 한다

법정스님도 10년을 거절했고 10년이나 포기하지 않고 첮아간 김영환도 대단 하십니다

내가 자란 성북동에 대원각이 있었고 그것이 길상사라는 것을 안지도 몇년 안되었습니다

어릴적 배가 고파 귀생길로 간 김영한은 춤을 잘 추어 신윤국의 도움으로 춤공부를 하였지만 옥에 갇힌 신윤국을 옥 뒷바라지를 하러 다시 귀생을 하며 백석이라는 그 당시 4대 미남인 백석 시인을 만나 사랑을 하였지만 백석 집안의 반대로 백석은 강제 결혼을 했고 멀리 떠나 자야와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자야(김영한)은 백석의 출세길을 망칠까봐서 둘이 아주 멀리 만주로 가자 했으나 남쪽에 머물고 백석은 만주로 갔으며 남북이 갈리고 소식이 끊어지고 맙니다

백석

윤동주,황순원,백석, 1명?
그 당시 4대 문학계 미남?

김영한 자야가 기브하고 천억 현재 싯가(사업가 김숙으로개명(삼청각_청운각_대원각 , 요정정치 )

종교가 없다는 김영한이다

길상사는
이천억원으로 성북동 주민과 모든 국민이 무료로 다녀가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성북동에는 많은 문학가들의 모임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길상사는 7천평으로 어마한 땅 금싸라기 땅을 국민에게 선물 하여 백석과 자야 그리고 법정 스님을 생각하게 하는 곳입니다

훗날 자야 (김영환)는 늦싹이로  중앙대학에 가서 대학 공부를 하였습니다

정말 멋진 여인입니다
대원각의 주인이였던 김영한 ~
말로만 어릴적에 듣던 대원각이다

무소유로 산다는것 쉽지 않으나 결혼도 안하고 백석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살았을 자야의  일편단심 인생 나 죽거든 화장 해서 눈오는 날에 뿌려달라는 부탁도 이루었습니다
대원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듯이 길상사에도 더 많은 사람이 오고 갈것입니다

진향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백석으로 인한 삶
1천억원은 백석의 시 한줄만도 못하다는 말을 남기우고 갔습니다

길상사에는 가을이면  빨간 꽃무릇이 핀다고 합니다

꽃무릇 꽃말

꽃말은 참사랑 ♡♡♡
참 참 참 사랑 얼마나 해봤을까요?
옛날 여성은 참 헌신적입니다

작가 이상의 아내 김향안은
이상을 만났고 사별 후 그의 헌신적 뒷바라지로 현대미술의 작가 김환기를 만들어 낸 위대한 여인이다.

임종 전날 길상사를 찾아와 합장하고
자야 부인은 인터뷰를 한 후 1주일 후에  잠자는 모습으로 편하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길상사 유래 답게 꽃무릇 꽃말처럼  참사랑을 이루시려면 길상사에 한번 가 보시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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